나에게 다이소는 마지못해 가는 곳이었다. 마음 같아선 무인양품에 가고 싶었지만, 가격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패스. 나름 저렴하다는 이케아도 노려봤으나 교통편을 고려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포기. 하다못해 동네 마트도 부담스러워, 최후에 찾는 곳이 바로 다이소였다. 시세는 천 원에서 삼천 원, 비싸도 오천 원인 그곳은 다른 상점에서 물건 하나 살 가격에 최소 두 개는 살 만큼 인심이 후했다. 그런데 다녀오면 이상하게 찝찝하다고나 할까. 딱 꼬집기 어렵지만 디자인이 묘~하게 촌스러워서 만족도는 늘 10점 만점에 5점을 웃돌았다. 눈을 시뻘겋게 뜨고 찾으면 가끔 괜찮은 녀석을 건지기도 했으나 그래도 7~8점. 즉, 용을 써도 만점에 닿지 못하는 애매~한 곳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단돈 천 원이 아쉬운 대학생 시절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학기마다 하숙집, 고시원, 기숙사를 전전하다 보니 늘 필요한 물건이 생겼는데 그럴 땐 가깝고, 있을 만한 건 다 있고, 무엇보다 싼! 다이소만 한 데가 없었다. 세상에 프라이팬이 오천 원인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주부들이 애용하는 홈쇼핑에서도 그만한 가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록 엄청난 품질은 보장할 수 없지만 다이소에서는 프라이팬도, 냄비도 오천 원이면 통과. 고작 계란 프라이나 하는 나에게 티타늄이니 세라믹이니 이름도 거창한 코팅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최소한의 기능만 한다면, 그래서 값도 최소한이라면 그저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최소한만 하던 다이소가 점점 진화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기, 뷰티 제품 등 가릴 것 없이 품목을 확장하더니 디자인도 갈수록 세련미를 더했다. 엄마표 인테리어처럼 집을 알록달록 수놓던 정다움을 벗어던지고, 차분하고, 귀엽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입맛에 맞게 고루 갖췄다. 게다가 디즈니, 산리오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와의 협업도 심심치 않게 하고야 말았으니, 다이소는 더 이상 마지못해 가는 곳이 아닌 안달 나서 가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다이소의 빨간 간판을 보면 홀린 듯 빨려 들어갔다. 생필품이 떨어지면 다이소, 인테리어를 할 때도 다이소, 선물도 다이소, 그냥 다이소. 집에만 있는 나에겐 다이소에 가는 것 그 자체가 콧바람 쐬는 일이자 일탈이었다. 딱히 살 게 없었는데도 나갈 땐 장바구니를 한 아름 안게 되는 마성의 방앗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하루 종일 울적했던 그날도 나는 다이소에 갔다. 애초에 사려고 했던 물먹는 하마는 금방 찾았으나 돌아가기 섭섭했던 나는 괜히 문구 코너를 한 바퀴 돌고, 신상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해 버렸다. 짱구 투명 파우치, 천 원! 분명 집에 파우치가 있고, 당장 쓸 일도 없었지만 보자마자 운명이라는 걸 직감했다. ‘아... 하나같이 예쁘다. 짱구도 귀엽고, 흰둥이도 사랑스럽고, 부리부리몬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저항 없이 디자인을 고르는 동안, 그게 뭐라고 행복해졌다. 그날의 첫 기쁨이었다.
결국 나는 계획에 없던 짱구 파우치를 샀다. 내 것 하나, 짝꿍 것 하나. 의사도 묻지 않고 나는 부리부리몬, 짝꿍은 흰둥이로 정했다. 사실 둘 다 내 거나 다름없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