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짝꿍이 물었다. “너는 뭘 할 때 좋아?” 그 질문을 뗀 지는 이미 오래전. 답은 언제나 준비돼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말문을 트고 답을 이어가려는데, 몇 초가 지나도록 입을 통과하는 말이 없었다. “어... 어... 그러게. 나 뭐 좋아했더라?”
순간 당황했다. 일기를 쓸 때마다 끄적였던 단골 질문에 답을 못한다니. 어려운 것도 아니고, 곤란한 것도 없는데. 서둘러 자문자답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요즘 들어 나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오르는 것들은 죄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뿐이고, 오늘의 나는 뭘 할 때 온전히 기쁜지 알지 못했다. 아뿔싸, 빠른 세상에 넋 놓고 사느라, 질문하는 법을 까먹고 말았구나.
한창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던 시절에는 일기장을 펴놓고 질문을 늘어놓았다.
나는 어떤 사람?
뭘 하고 싶어?
뭘 할 때 좋아?
내가 평소에 많이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태어날 때부터 나로 살았지만 나를 몰랐던 나는 질문하고 답하면서 나에 대해 알아갔다.
쓰고 그리기로 결심한 후에도 나는 질문부터 던졌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어떤 글을 좋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뭘까?
여기서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질문의 덕을 본 나는 어느새 묻고 답하는 걸 성가시게 여기는 배반자가 되었다. 생각할 여유는 몽땅 스마트폰에 내맡기고, 알고리즘이 대령하는 대로 받아먹었다. 일도, 가사도, 취미도, 관계도 SNS에서 이게 좋다, 저게 맞다 하니까, 나도 이게 좋나 보다, 저게 맞나 보다 했다. 그렇게 “뭘 할 때 좋아?”라는 작은 질문에도 답할 수 없는 속 빈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나를 되찾아야 했다. 질문이 사라져 껍데기만 남은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해 질문을 소환했다.
뭘 좋아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어떻게 살길 바라?
오랜만에 떠올린 답은 겉돌았다. 본심이 아닌, 모범답안처럼. 깊숙이 처박힌 마음을 길어 올리는 데에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묻고, 또 묻고, 파고들고, 헤집고. 같은 질문에 변치 않는 답이 있는가 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답도 있었다. 나는 멈추어 있으면서 흐르고 있었고, 바뀌었으면서 그대로였다.
나는 계속 나이기 위해 질문해야 했다.
다른 사람 생각 말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거짓 말고, 진짜 나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