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조카는 나에게 이런 의미였다.
언니 배에서 탄생한 생명.
언니를 엄마로 만든 아이.
언니를 행복하게 하면서 힘들게 하고,
우리를 연결하면서 단절시키는 존재.
너무 작아서 차마 어루만지기도 아까운 아기를 보며,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감격스럽고 애석했다.
그런 조카의 힘을 처음으로 느낀 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실연을 겪은 때였다. ‘세상에, 이별이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구나.’ 슬픔이 하루를 잠식해서, 간신히 숨만 붙이고 지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한 달간 제대로 먹지 못해 문드러진 나를 언니가 호출했다. 그리고 대뜸 조카를 안겼다.
포옥- 아기의 맨살이 내 어깨에 닿았다.
촉촉하고 말랑한 볼, 달곰한 냄새.
조카가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동그란 몸이 오르락내리락- 고요히 그 호흡을 느끼고 있는데 부서진 마음이 조금씩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위로받았다. 언니는 웃으며 “신기하지?”라고 말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걷고 말하고,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를 이모로 인식한 후, 언니를 만나러 가는 날에는 늘 이른 연락이 왔다. “이모 언제 와?” 분명 도착 시간을 알려줬는데도 소용없었다. 언니는 아이가 현관문만 보고 기다린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이윽고 나를 발견하면, 팔을 활짝 열고 달려와 안겼다.
나는 조카를 대하는 게 서툴렀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맥없고, 어설퍼서 나 같으면 이런 이모가 못마땅할 텐데 조카는 헤어질 때마다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를 꽉 끌어안고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이토록 빛나는 사랑을.
초등학생이 되어, 스마트폰을 갖게 된 조카가 어느 날 내게 카톡을 보냈다.
“이모조운아침”
응. 조운 아침이야.
햇살 같은 너의 존재 덕분에 정말로 행복한 아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