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소원을 빈 적이 있다.
‘제빵사랑 결혼하고 싶다.’
빵을 열렬히 사모했던 나머지 1일 3빵을 꿈꾸며 내뱉었던 말인데, 웬걸 지금 내 옆에 제빵사가 된 이응이가 있다. (꾸... 꿈은 이루어진다?!)
나의 빵 역사 첫 페이지는 ‘밀크요팡’으로 시작한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던 시절,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꼭 식후 땡으로 빵을 먹었다. 후다닥 밥을 밀어 넣고 자전거에 올라타, 오빠와 함께 슈퍼로 출동했다. 마치 영화 이티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어둑어둑한 동네를 가로질렀다. 슈퍼 판매대에는 다양한 빵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밀크요팡을 가장 좋아했다. 부드럽고, 고소하니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았다. 나는 그 녀석이 사라지는 게 아까워, 한 겹 한 겹 소중히 벗겨 먹었다. 황홀한 맛, 그리고 오빠와 함께 웃었던 행복한 추억.
다음 페이지는 바로 ‘생크림 슈.’ 슈퍼마켓 빵에서 졸업하고, 동네빵집으로 갈아타는 과도기에 만난 빵. 그전까지 내 취향은 소보루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란 단팥빵, 크림빵같이 기본에 충실하고 가성비 있는 빵이다) 그러나 친구의 추천으로 생크림 슈에 입문한 나는 오랜 벗인 소보루에게 작별을 고했다. 슈의 폭발력은 옛정을 산산이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동그란 슈를 입에 투하하고 앙 베어 물면, 쾅! 생크림이 입 안 가득 터졌다. 나는 생크림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용돈을 죄다 빵집에 바쳤다. 돈이 생길 때마다 한 알, 두 알 사서 즉시 입에 던져 넣었다. 무시무시한 슈 중독에서 벗어난 건 그로부터 한참 후. 하도 먹어서 생크림에 무감각해지고 나서야 슈를 놓아줄 수 있었다.
세 번째 챕터는 매점 빵. 고등학생 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맛보다 무조건 양이었다. 종이 울리면, 조건 반사처럼 매점으로 달려가 빵을 샀다. 단골 메뉴는 옥수수크림빵과 샐러드빵. 친구들과 나는 굶주린 맹수처럼 빵을 사냥해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하루는 옥수수크림빵의 문제로 다 같이 배탈이 난 적도 있었는데 그 정도 아픔쯤은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먹고, 먹고, 또 먹어서 교복 치마 지퍼를 올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상경한 후에는 카페에 발을 들이면서 커피와 곁들이는 디저트에 눈을 떴다. 티라미수 케이크, 허니브레드, 와플 등 빵의 맛도 모양도 화려해졌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데이트할 때 이런 디저트 하나를 시키는 게 필수 코스가 되었다. 케이크는 생일에나 구경하던 때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러나 지방에서 온 자취생의 주머니 사정은 미식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저렴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빵을 마지못해 먹는 날도 많았다. 그야말로 빵의 명암이 선명했던 시절이라고나 할까?
그 후 빵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제는 맛없는 빵집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와 함께 내 입맛도 고도화(?)되어, 웬만한 빵에는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일개 빵순이 주제에 ‘어디 한번 나를 감동시켜 보시지.’라는 뻔뻔함을 장착하고 빵집을 쏘다녔다. 동네빵집 도장 깨기를 하면서 나름 순위를 매겨 보고, 외출할 때 들렀던 맛(빵)집 데이터도 쌓았다. 특히 이응이가 제빵을 배우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삶에 빵이 들어와, 나는 빵 관계자가 되었다.
비록 내 소화기관은 1일 3빵을 버틸 수 없는 약골이 되었지만, 나의 빵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분명 어제 배 터지게 빵을 먹고 당분간 안 먹겠다고 다짐했으나, 나는 오늘도 빵을 찾았다. 아마도 이 굴레는 평생 반복될 터. 나는 언제고 빵을 먹으며 이런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매일 빵을 먹다가 결국 빵집을 차리게 된 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