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구경이라곤 창밖 동네가 전부였던 삼일, 정신없이 마감을 하고 한숨 돌리려는데 문득 벚꽃 생각이 났다. ‘서울에도 벚꽃 필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거나 말거나 이대로 집에서 쉴지, 잠깐 콧바람이라도 쐴지 고민하다가 결국 밖으로 나갔다. 봄꽃은 게으른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아쉬운 내가 움직일 수밖에.
며칠 사이 가시 같았던 나무에 보드라운 옷이 생겼다. 버드나무에는 완두콩이, 벚나무에는 눈송이가, 개나리에는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일 년 만에 만난 풍경에 새삼스러워하는 내 눈앞에 연이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동안 꽁꽁 싸맨 사람만 드문드문 있던 산책길에 봄옷을 입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숨어있었는지, 활짝 핀 꽃만큼 사람도 한 아름이었다.
그 속을 유유히 걸으며 나는 벚꽃을 보다가, 이내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 벚꽃을 눈에 담는 사람, 벚꽃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이를 찍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벚꽃 사이를 달려가는 사람. 모두가 웃고 있었다.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으며 생각했다. ‘봄은 이런 계절이구나. 싹을 틔우고, 웃음을 꽃피우는.’
나이도 성별도 생김새도 삶의 모양도 다 다르지만,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꽃을 보고 싶은 마음, 꽃을 보면 웃게 되는 마음,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봄에 꽃이 피는 건 그저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비로소 봄이 되어, 기어코 꽃을 피우는 건 우리를 웃게 만들기 위한 것 아닐까? 웃는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는 게 참 찬란하다고 느꼈다. 살아있는 게 기껍고, 감사하다고.
며칠 뒤, 한차례 비가 내리고 꽃은 졌다. 수없이 겪은 일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나는 속절없이 아쉬웠다. 아직 봄꽃을 다 누리지도 못했는데. 그러나 잠시 후 반가운 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자, 마음에 꽃잎이 흩날렸다. 행복해서, 나도 함께 웃었다.
벚꽃은 떨어졌지만, 벚꽃을 보며 웃었던 마음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곧 여름이 오고 무더워져도 여전할 마음. 나를 웃게 만들기 위해 핀 꽃을 생각하며, 여름에도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선명한 색을 닮아, 쨍하게 웃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