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근처에는 안양천 생태공원이 있다. 대왕 집순이인 내가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바깥 공간으로, 사시사철 생명이 넘쳐흘러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약 2년간 안양천을 누비며 만났던 동물 친구들 이야기.
왕 거북이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진 날. 안양천을 걷고 있는데 보행로 저 멀리 낯선 덩어리가 보였다. 이끼 낀 돌인가 싶은데 천천히 움직이는 그 녀석. 가까이 가서 보니 웬걸, 왕 거북이였다. 안양천에 거북이가 산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뜬금없이 등장한 녀석을 보고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거북이가 안 산다는 말도 못 들어봤으니까 있을 법도 하지. 너는 어디서 왔니?
비 갠 후 땅은 점점 말라가는데 느으릿 느으릿 걸어가는 거북이. 덩그러니 공원을 활보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들어다가 물가에 놓아 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응이가 말했다. “거북이가 물면 손가락 끊어져.” 아, 그렇구나. 결국 거북이를 천에 데려다주지는 못하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뒷모습만 한참 바라보았다. 겁쟁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다였다.
그날 저녁, 엄마랑 통화하다가 거북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가 말했다. “거북이는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가.” 그렇구나! 너 물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구나. 거북이에 대한 존경심이 물씬 올라왔다.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아는 거북이는 끝내 물을 만났을 터. 그 후 거북이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안양천 어디에선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거라 믿었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