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책장 정리를 했다. 작업 공간을 바꿀 때부터 미뤘으니 어언 수개월만. 엉망으로 꽂힌 책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기로 작정했다. 오늘은 냉혹한(?) 책장 숙청 이야기.
버려진 책들
먼저 책장을 빠르게 훑으며 버릴 책들을 솎아 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미련 없이 작업이 이어졌다. 바닥에 쌓인 책은 서른 권 남짓.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최고로 꼽으며 머리맡에 두었던 책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손이 가지 않는 책도 있었다. 모아 놓고 보니 부, 재테크, 부자, 경제... 아무튼 죄다 돈과 관련된 책들. 지난날 내가 무얼 좇고 살았나 눈에 훤히 들어와 마음이 시큰했다. ‘돈 없이 살 수 없지만, 돈을 위해 사는 것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게 오늘의 마음. 책장 한 칸을 비우며 삶의 우선순위도 말끔히 정리했다. 내 행복의 기준은 숫자가 아니올시다.
살아남은 책들
다음, 책장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카테고리별로? 아니면 유명 작가를 따라 색깔별로? 많지도 않은 책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애정도에 따라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첫 번째, 내 눈높이에 있는 칸은 가장 소중한 책으로 채웠다. 일단 내가 쓰고 그린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소심백서』를 꽂아놓고, 그 옆은 나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준 두 작가님의 책을 모셨다. 바로 마스다 미리 작가님의 만화책과 사쿠라 모모코 작가님의 에세이.
마스다 미리 작가님의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그림일기를 시작한 계기가 된 책이다. 생일 선물로 받은 ‘수짱 시리즈’를 보고 내 만화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맵고, 달고, 짠맛만 알던 나에게 평양냉면의 감칠맛을 알려줬다고나 할까? (사실 진짜 평냉 맛은 잘 모른다) 당시 ‘나도 이런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스치듯 생각한 게 오늘날에 이르렀다. 마스다 미리 작가 특유의 슴슴하고 깊은 이야기는 언제나 나에게 귀감이 된다. 길을 잃었을 때 꺼내보는 책으로, 당당히 상석에 안착.
사쿠라 모모코 작가님의 책은 내 추구미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사랑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머 한 스푼이 들어가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 사쿠라 모모코 작가님의 이야기가 딱 그렇다. 입안에 넣으면 팡팡 튀는 사탕처럼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맛. 도무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경지는 본투비 노잼 인간인 나로선 닿기 힘들지만, 동경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내가 짓는 이야기가 그와 닮길 바라며, 『소심백서』 옆에 고이 간직 중.
📓 첫 번째 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