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버리긴 아깝고, 보관하자니 짐스러운 책 꾸러미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예상 수입은 2만 원. 그 돈으로 집 가는 길에 과자나 사 가려고 했더니, 무려 4만 원을 벌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이 달라지지? 책이 들어있었던 장바구니를 그대로 들고 마트로 직행했다. 식료품 코너를 유유히 돌며 장을 보고, 저녁에는 치킨까지 뚝딱. 책장에 있던 책이 돌고 돌아 밥상으로... 예측 불가 중고 거래의 마법이었다.
내 인생 첫 중고 거래는 학교에서 했던 ‘아나바다’ 캠페인.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중고 거래의 고전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면, 나는 집에 있는 잡동사니를 다 쓸어갔다. 내 목적은 두 가지. 1번 많이 팔기, 2번 레어 아이템 사기. 어쩐지 친환경 취지와 동떨어진 것 같지만, 아나바다는 늘 대성황이었다. 친구들의 쓸모없고, 희귀한 취향을 구경하기엔 이만한 이벤트도 없었다.
제대로 된 중고 거래는 ‘중고나라’ 활동으로 시작했다. 최저가, 할인, 이벤트를 전전하는 자취생에게 마지막 손길을 내미는 곳이 바로 네이버 카페 랭킹 1위 중고나라. ‘등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판매 글에 누구보다 빠르게 댓글을 달아야 하며, 가끔은 실물과 다른 사진에 홀라당 속기도 하는 중고 정글에서 나는 조용히 치고 빠지며 나름의 감각을 익혔다.
중고 거래가 일상이 된 건 ‘대 당근 시대’가 도래한 후. 친구가 “우리 남편이 요즘 당근에 빠졌어.”라고 언급한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당근을 좋아하신다니, 눈이 건강해지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앞으로 펼쳐질 당근의 파급력을 몰라도 한참 몰랐더랬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곳곳에서 “당근” “당근” 하더니 온도를 올린다는 둥, 동네 밥 친구를 구한다는 둥 너도나도 당근에 열을 올렸다.
왕소심인 이자 내향인인 나는 당근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직거래할 때 “혹시... 당근?”의 분위기를 견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몇 차례 이사를 하면서 나도 당근의 중독적인 맛에 빠지고야 말았다. 중고 가구를 사고파는 데에 당근만 한 게 없었고, 구하기 힘든 아이템도 당근에서는 저렴한 가격까지 등에 업고 등장했다. 특히 흠 없는 물건을 나눔 하는 귀인을 만날 때면 어떤 인류애까지 느껴졌다.
그 결과, 이런 나조차 당근력이 많이 올라서 이제는 부담 없이 중고 거래를 한다. 집에서 놀고 있는 물건을 보면 냉큼 당근 각을 재고, ‘직거래만 가능합니다.’라는 글도 의젓하게 올린다. 게다가 저 멀리 걸음걸이만 봐도 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까지 생겼다.
물론 채팅에서 예측했던 이미지가 가끔 빗나가기도 한다. 그럴 땐 당황한 걸 티 내지 않고, 쿨 거래를 한 뒤, “이것도 중고 거래의 묘미 중 하나지.”라고 웃어넘기면 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프로 당근인의 자세일 뿐, 놀라서 진땀 뻘뻘 흘리는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