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공기가 집순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좀처럼 나가지 않는 나도 가을만큼은 못 참지. 모처럼 달리고 싶어져, 창고에 박혀있던 자전거를 꺼냈다. 못 본 사이 먼지가 쌓이고, 타이어 바람도 빠져 골골대는 녀석.
이 자전거를 장만한 건 2020년. 지하철역에서 먼 곳으로 이사 가면서였다. 마침 한강공원이 가까워서 운동 겸 타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 나는 (화려한) 장롱면허였으나 자전거는 곧잘 탔다. 성인이 된 후로는 거의 타본 적 없었지만, 따릉이로 시운전을 해보니 어릴 적 무릎에 멍 들어가며 특훈했던 감각이 어디 가지 않았더랬다.
그곳에서 지낸 3년 동안 자전거는 내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카페, 은행, 병원 등 개인적인 볼 일이 있으면 자전거를 탔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거리도 웬만하면 자전거로 해결했다. 행군하듯 커다란 배낭을 메고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오기도 하고, 자전거를 끌고 육교를 오르내리며 수영장에 다녔다. 몸을 쓰니 덩달아 마음까지도 튼튼해졌다.
덕분에 뜻밖의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다가 말 그대로 ‘발라당’ 넘어졌다. 익숙한 길이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아서 신나게 페달을 밟았는데 하필 골목에서 자동차가 튀어나온 것. 순간 화들짝 놀라서 브레이크를 급히 눌렀더니, 뒷바퀴부터 붕- 하고 날았다. 그 찰나가 슬로 모션처럼 흘렀다. ‘어라라? 뜬다, 떠!’ 그리고 꽈당 엔딩. 주변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서 툭 털고 일어나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 나이에 이렇게 자빠지다니!’ 별안간 너털웃음이 터졌다. 쓰라린 무릎과는 별개로 어쩐지 유쾌한 기분.
또 어떤 날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길래 서둘러 집으로 향했는데, 곧 토하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피할 새도 없이 쫄딱 젖은 나는 그냥 될 대로 돼라, 포기해 버렸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고, 속눈썹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인간 물미역이 되어, 광란의 라이딩을 했다. 빗속을 뚫고 나아가자 왠지 속이 시원해져서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지나가던 사람은 난데없는 내 모습에 섬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애틋했던 우리는 2년 전,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점점 소원해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안 타 버릇하니 더 안 찾게 되고, 몸이 굳으니 이내 마음도 굳어서 자전거를 타려면 결심을 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이게 뭐 별일이라고 각오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나이가 들수록 안 하던 걸 하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오랜만에 만난 자전거는 상처 입은 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옆 동네 자전거 상점에서 정비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자전거에 올라타, 한강 공원을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강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지나갔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도 바람결에 함께 날아갔다.
스쳐 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가을밤을 만끽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예전에 살던 동네까지 닿았다. 지난날, 그곳에 털어놓았던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많은 게 변했고, 그럼에도 변치 않은 마음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달렸다.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내 등을 밀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