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점
백화점이든 쇼핑몰이든 사람 많은 곳에 쇼핑하러 가기만 하면 기가 쪽 빠지는 나. 인파를 뚫기도 어렵고, 점원 선생님을 피하는 것도 송구스러워 오프라인 쇼핑을 꺼린 지 오래다. 그러나 이런 나도 어깨 펴고 당당히 활보하는 장소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문구점.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문구점 이야기.
알파
직장 생활을 할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알파. 사무용품을 사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지점에 따라 인쇄도 가능하고, 도장까지 팔 수 있어 든든했던 만능 문구점. 당시엔 이 모든 걸 (마법의) 법카로 해결했기에, 공짜로 쇼핑하는 기분을 냈더랬다. 사회 초년생 시절, 심부름하러 갔다가 문구 속에 파묻혀 숨을 골랐던 건,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비밀.
핫트랙스
책 사러 갔다가 문구만 잔뜩 사서 돌아왔다는 전설은 우리 집에서 유명하다. 학생 때부터 삼십 대가 된 지금까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곳. 가격도, 종류도 천차만별인 문구인의 성지 핫트랙스 되시겠다. 기능에 충실한 문구부터 팬시 문구까지 모든 카테고리를 섭렵하는 이곳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까지 판매하며 성실히 문구인의 지갑을 공략하는 중. 내게는 매년 연초에는 다이어리를,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며 몇 시간이고 핫트랙스에 머물렀던 추억이 있다. 이제는 조카 선물을 사러도 찾게 되는 핫트랙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문구점이다.
무인양품(MUJI)
내 취향을 가장 정밀하게 타격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무인양품. 이곳의 생활용품, 의류도 좋아하지만, 먼저 손이 가는 건 역시 문구다. 무지 특유의 단순하고 차분한 디자인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어느 곳에나 툭 던져놔도 잘 녹아드는 무인양품의 문구. 품질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제일 애용하는 건 노트류. 실로 꿰맨 제본 노트, 더블링 노트 등 여러 가지 노트를 일기장, 작업 노트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구매한 건, 속지를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폴리프로필렌 커버 리필 노트’. 엽서나 스티커로 표지를 꾸미면 마음이 몽글해진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를 위한 선물로 종종 무인양품 문구를 사는 게 나의 소소행.
포인트오브뷰
고급 문구점 포인트오브뷰. 문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지닌 브랜드다. 작은 문구 하나도 허투루 팔지 않는 곳. 포인트오브뷰 매장에 가면, 참신하고 아름다운 문구에 눈이 팽글팽글 돌아 정신을 못 차린다. 문구의 깊고 넓은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면 추천하는 곳. 미감을 벼리기에도 이만한 곳이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은 가격... 집에 들이기까지 (약간의) 각오가 필요한 문구점이다.
비싸고 화려한 물건보다 작고 소박한 물건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유년 시절과 맞닿아있다. 살 수 있는 게 소소한 것밖에 없어서 그것만 사다 보니, 어느새 사랑에 빠졌다고나 할까. 내 주머니 사정에도 안심할 수 있고, 마침 손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하니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문구점 만한 곳이 없었다.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요즘, 나는 더욱 간절히 문구를 찾는다. 문구가 주는 온기가 좋아서.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쓰고, 다듬는 순간이 나를 붙잡아줘서. 타인에게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몰입할 수 있게 해줘서. 그런 문구가 가득한 문구점은 언제나 내 생활을 지지해 준 안전지대다.
마지막으로 한 곳을 빼먹었는데, 그 어떤 곳보다 내가 즐겨 찾는 문구점이 있다. 나의 도파민 충전소이자 방앗간인 다이소. 사실 다이소 선에서 웬만한 문구점은 다 정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