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언어
사촌 자매들과 카톡을 하던 중이었다. 자매들이 보고 싶어 “보고싶수쿠리”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도착한 답장. “수쿠리?”
아차차. 오타도 아니고, ‘보고 싶다’와 ‘소쿠리’의 합성어도 아닌 이 ‘보고싶수쿠리’는 짝꿍 이응이와 내가 즐겨 쓰는 말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 민망함에 재빨리 정정했지만, ‘다녀왔수쿠리’, ‘모르겠수쿠리’ 등 수쿠리어(?)는 빠르게 전염되고 말았다.
이응이와 나만 쓰는 정체불명 언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옹콩’, ‘뜨공’, ‘타랑해 탕탕탕’이 대표적인 예. 옹콩은 우리 집 둘째 고양이 이름 ‘옹심’과 ‘콩’이 합쳐진 말이다. 뜬금없이 왜 콩이 붙었냐 하면 나도 모른다. 그냥 옹심이가 콩처럼 귀여워서 붙인 말 같다. 정다운 어감도 한몫했을 터. 그에 비해 뜨공은 나름 맥락이 있다. 첫째 고양이 이름 ‘스치’가 혀 짧은 소리 ‘뜨띠’로, 거기에 ‘공주’까지 더해져 뜨공(뜨띠+공주)이 탄생했다. 스치를 왕족처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타랑해’는 당연히 ‘사랑해’에서 파생된 표현. 거기다 총 쏘는 소리 ‘탕탕탕’을 덧붙여 타격감(?)을 넣었다.
...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솔직히 별 뜻 없다. 포부를 품고 만든 게 아니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말. 남들에게 공표하기는 낯부끄러워도 우리 집에서는 엄연히 통용되는 언어다. 무려 고양이들도 알아듣는다. “옹콩!” 하면 옹심이가 귀를 쫑긋하고, “뜨공~” 부르면 스치가 나를 향해 총총 달려온다. 진짜다.
한 무리에서만 쓰는 표현 중 내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은 말은 ‘그슥’이다. 경북 토박이 큰이모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전라도의 ‘거시기’와 비슷하다. “그슥 그렇게 하지 말고, 그슥해가꼬 그슥해라.” 한 문장에 세 번이나 들어간 그슥. 다 다른 의미 같긴 한데 도통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외가 친척들은 척척 알아듣는다. 자식 세대에게 암호 같은 그슥은 오로지 외가 어른들만의 언어.
그런가 하면 피가 섞이지 않았고, 일면식도 없는데 통하는 언어가 있다. 바로 ‘집사’의 언어. 여기서 집사는 고양이를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는 사람을 뜻한다. 집사들이 애용하는 표현으로는 ‘골골송’, ‘감자 캐기’, ‘냥모나이트’ 등이 있다. 골골송은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를 일컫는 말이고, 감자 캐기는 밭에서 감자를 캐듯 화장실 모래에서 고양이 대소변을 걸러내는 걸 말한다. 마지막으로 냥모나이트는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고양이 자세를 뜻하는 말.
우리 집 언어를 총동원하면 이렇다.
“우리 뜨공이 골골송 부르는구나. 나도 타랑해 탕탕탕!” |